‘소리꾼’ 이봉근, 그의 눈빛에서 보인 학규 [인터뷰]

인터뷰 2020. 07.07(화)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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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셀럽 전예슬 기자] 우리 가락을 가장 아름답게 들려줬다. 명창에서 배우로 첫 연기 도전에 나선 이봉근. 그가 아니었다면 누가 학규 역을 소화했을까.

‘소리꾼’은 소리꾼들의 희로애락을 조선팔도의 풍광명미와 아름다운 가락으로 빚어낸 영화다. 그렇기에 ‘소리꾼’의 음악과 노래는 배경이 아닌 영화적 핵심이다. 소리꾼 학규의 입을 통해 음악이 만들어지면서 영화가 흘러가는 것. 영화의 중심인 학규 역에 명창 이봉근이 첫 스크린 연기에 도전했다.

“스크린 연기는 처음이지만 기존 연극이나 무대 위에서 하는 연기는 많이 했어요. 스크린 연기는 아무래도 형식으로 이뤄졌던 연기와 많이 다르잖아요. 간극을 좁히는데 노력했으나 부족하더라고요. 재밌게 촬영했다고 생각해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잖아요. 그건 욕심쟁이에 불과해요. (웃음) 지금의 제 모습으로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앞으로 배우로서 활동과 행보를 기대해주세요.”

조정래 감독은 대한민국 정통 음악의 영화적 구현을 위해 연기자가 아닌 전문 국악인 이봉근을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이봉근은 KBS2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판소리 명창의 면모를 드러내며 주목받은 바. 조정래 감독의 새로운 시도와 이봉근의 출연은 영화음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 첫 연기 도전을 앞두고 이봉근이 그려간 학규란 인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학규 역으로 배정 받았을 때 우리나라 영화 중 사극 영화를 많이 봤어요. 사극 장르를 접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판소리 창극이 있지만 거기에 쓰는 연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극 영화도 사극톤의 연기가 있고, 생활연기 두 가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물어봤어요. ‘가장 학규스럽게 하면 돼’라고 하셨죠. 거기서 멘붕이 왔어요. 하하. ‘어떻게 하지?’ 하다가 학규 인물을 분석하다 보니까 굉장히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내 간난이(이유리)에게 굉장히 많은 권력이 있고, 학규는 많은 의존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잡았던 캐릭터적인 장치들은 구시렁거리는 말투였어요. 의존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죠. ‘소리꾼’은 1년 전과 후로 나뉘어요. 1년 후 학규는 간난이를 찾아다니다 보니까 내적으로 혼자에 집중을 많이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는 인신매매를 당하고, 딸이 눈을 다친 것도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함께요. 죄책감에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 같았죠. 학규를 연기할 때 최대한 작게 대사를 쳤어요. 그 순간 감정들을 안에 쌓아뒀다가 소리판에서 터트리는 인물이지 않을까 하면서 연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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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근은 오디션을 통해 ‘소리꾼’ 주인공에 발탁됐다. 쟁쟁한 실력자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그는 학규와 닮은 ‘눈빛’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오디션 공고가 떴을 때 오디션 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소리꾼으로서 적합한 배역이지 않을까 싶어 지원하게 됐죠. 선배, 후배들도 많이 지원하셨더라고요. 연기를 준비하고 오디션장에 가니 심사위원이 스무 분 가까이 계셨어요.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소리를 먼저 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연기를 먼저 하라고 하셨죠. 하하. 그때 멘탈이 흔들렸어요. 파르르 떨면서 연기를 했어요. 아마 그분들은 제가 소리를 하는 건 알고 계셔서 연기를 보고 싶으셨을 거예요. 연기를 정말 못했어요. 연극톤도 아니고, 스크린톤도 아닌 애매하게 연기를 했죠. 그 과정에서 저의 바닥을 많이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그때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그 안에서 학규라는 인물의 눈빛과 많이 닮아있더라’라고 하셨죠. 그래서 제가 학규 역에 되지 않았나 싶어요.”

어느덧 판소리 26년차인 이봉근. 그는 중학생 때 아버지의 권유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남원 국악예술고를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를 나와 수많은 무대에 올랐다.

“제가 16살 때 소리를 접했는데 그 전까지 꿈이 없었던 아이였어요. 중2병도 없었고 순종적인 아이였죠. 아버지께서 저에게 판소리를 처음 권유했을 땐 너무 싫었어요. 남원이 고향이라서 판소리에 대해 잘 알곤 있었지만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소리를 학습하면서 오는 희열감이 있더라고요. 어려운 기교를 시김새(판소리에서 소리를 하는 방법이나 상태 또는 국악에서 주된 음의 앞과 뒤에서 꾸며주는 꾸밈음)라고 해요. 그걸 성취했을 때 오는 성취감과 희열감이 어마어마했죠. 직접적인 성장을 느끼니까 판소리의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지금은 누구보다 소리를 사랑해요. 권장하고 싶을 정도로.”

이봉근은 ‘소리꾼’에서도 희열감을 느꼈다고 한다. 학규가 노래하며 지어내는 ‘심청가’ 이야기는 액자식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흥 넘치는 북 장단과 독보적인 우리 소리로 관객들에게 들려주면서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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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하는 첫 장면이 가장 끌렸어요. 학규라는 인물이 떠나는 여정에서 청이(김하윤)와 대봉(박철민)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 가장 좋더라고요. 흥미를 돋우는 장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소리꾼으로서 음악 하는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자리에서 종종 ‘판소리가 이렇게 만들어졌지 않았을까’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어떠한 소리꾼이 이야기를 만들다가 이 이야기를 극대화시킬 때 음악을 집어넣기도 하고 의성어, 의태어를 섞어가면서 판소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판에서 벌어진 노래가 아니라, 여러 소리를 해서 판소리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죠. 이렇게 상상을 하던 것들이 실제로 영화로 구현되니까 연기하고 나서 희열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이봉근의 피를 토해내는 절절한 소리를 보고 들으면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절정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장면을 앞두고 부담감이 없었냐는 질문에 이봉근은 촬영장에 모인 200여 명의 스태프와 보조출연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 장면을 앞두고 김강현 배우님이 ‘봉근아 어깨 힘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갔어, 왜 혼자서 하려 해, 형들에게 기대’라고 하셨어요. 형들에게 기대고 도움을 청하며 언제든지 받아주고 우리 안에서 앙상블이 만들어질 테니까 형들에게 기대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 장면 첫 테이크 때 연기를 하고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주제넘게 ‘죄송한데 멈추고 감정 잡은 후 들어 가겠습니다’라고 했죠. 긴 시간동안 집중을 했어요. 그때 보조출연자, 스태프까지 2~300명 가까이 계셨거든요. 철민 형님도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가자’라고 하셨어요. 제가 집중할 수 있게 다 기다려주신 거죠. 그렇게 다시 촬영이 시작됐고 그 이후로는 학규로 쭉 연기했어요.”

이봉근의 배우로서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양한 역할로 대중 앞에 서고 싶다고 바란 그. 이봉근의 꿈과 소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바다.

“소리꾼으로서 관객들과 만나는 건 한정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고, 동료 음악인들도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연기에 도전하게 됐죠. 언제 어디든 불러만 주신다면 열심히 할 계획이에요. 제가 연기자로서 필모가 없고 밑천도 없잖아요. 겁날 게 하나도 없어요. 단역이 됐든, 연극이든, 혹은 뮤지컬이든 다 도전해보려고 해요. 앞으로 저 스스로에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서울 게 없으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뭐든 부딪혀가면서 하나씩 쌓아 이번에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음 행보에서는 ‘동일인물인가?’할 정도로 발전을 이루고 싶어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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